점자블록 위 불쑥…방치된 킥보드, 시각장애인에겐 ‘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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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11-05 12:05 조회 1,312회 댓글 0건본문
점자블록 위 불쑥…방치된 킥보드, 시각장애인에겐 ‘지뢰’
등록 :2020-11-05 04:59수정 :2020-11-05 07:08
잠실∼석촌 30분 거리 1시간 헤매
지팡이에 걸리면 “벽 같은” 느낌
돌아가려다 차도 침범 상황도 발생
“자전거는 부딪혀 위치 알 수 있는데
킥보드는 딱 성인 발목 높이
부딪히는 걸로 끝나지 않고 넘어져”
4차산업혁명위 주정차 지침 마련
13구역 지정 세울 수 없게 했지만
현실은 아직…정강이 멍·흉터
시각장애인 최아무개씨가 지난 3일 서울 지하철 석촌역 8번 출구 앞 점자 블록 위에 주차된 킥보드에 걸려 멈춰 섰다. 장필수 기자
‘드르륵 드르륵 탁’. “여기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노란 점자 보도블록 위를 순조롭게 지나가던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이 탁 소리와 함께 멈췄다. 주차된 전동 킥보드였다. 시각장애인 최아무개(40)씨는 케인을 들지 않은 왼손을 휘저어 자신의 왼쪽에 있는 근로지원인 황아무개(27)씨를 황급히 찾았다. 황씨의 팔꿈치를 붙잡고 나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킥보드라고 말해줘야 알지 아니면 몰라요. 점자 블록 위에 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다산콜센터나 경찰에 신고하면 처리해주는데 킥보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최씨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인근에 주차된 킥보드 옆을 지나가고 있다. 장필수 기자
‘도로 뒤 무법자’ 전동 킥보드는 최씨 같은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자들에게 지뢰나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에서 소리 없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데다 도로 곳곳에 방치돼 보행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최씨와 함께 지난 3일 오후 4시 반부터 한시간가량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9호선 석촌역 일대를 같이 걸었다. 최씨는 한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수시로 멈춰 서야만 했다. 전맹(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인 최씨는 오로지 케인 끝에 달린 롤팁이 전하는 노면의 촉감과 주변 소리만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도로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킥보드는 최씨에게 ‘벽’이나 마찬가지다. 석촌역 8번 출구 앞은 20여대의 킥보드가 점자 블록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점자 블록 위에 주차된 킥보드를 피해 돌아가려던 최씨의 케인이 킥보드 바퀴에 걸렸다. 최씨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곁에 있던 황씨가 붙잡지 않았으면 차도로 넘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검붉은 멍과 흉터가 곳곳에 있는 정강이를 드러내 보이며 “자전거나 오토바이면 허리에 닿아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킥보드는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황씨는 “킥보드는 높이가 낮아서 딱 어른의 발목에 걸린다. 부딪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넘어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주행 중 소음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소리에 민감한 시각장애인에겐 위험 요소다. “(킥보드는) 오토바이랑 자동차와 달리 전기로 가니까 소리가 안 나요. 타는 사람들도 조용히 피해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최씨가 말을 건네는 순간에도 바로 옆을 킥보드가 쌩하고 지나쳤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도로 소음이 심했던 탓인지 최씨는 킥보드가 본인 옆을 지나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현행법은 킥보드의 인도 주행을 금지한다. 그러나 이날 킥보드를 탄 사람들은 계속 인도를 오갔다.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 사거리에 여러 회사의 킥보드가 방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킥보드 관련 사고가 계속되자 지난 2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전동 킥보드 주정차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했다. 횡단보도, 점자 블록, 엘리베이터 입구, 자전거도로 등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13개 구역에는 킥보드를 세울 수 없도록 전동 킥보드 업체와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입법이나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이 필요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0분 만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최씨는 1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해 질 무렵 영상 2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케인을 쥔 최씨의 손이 파르스름해졌다. 근로지원인 황씨가 “손이 완전 얼음장 같네”라며 최씨 손을 감싸 쥐었다.
글·사진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8605.html#csidx21c657a70f37574a9132c60ca88de1a
등록 :2020-11-05 04:59수정 :2020-11-05 07:08
잠실∼석촌 30분 거리 1시간 헤매
지팡이에 걸리면 “벽 같은” 느낌
돌아가려다 차도 침범 상황도 발생
“자전거는 부딪혀 위치 알 수 있는데
킥보드는 딱 성인 발목 높이
부딪히는 걸로 끝나지 않고 넘어져”
4차산업혁명위 주정차 지침 마련
13구역 지정 세울 수 없게 했지만
현실은 아직…정강이 멍·흉터
시각장애인 최아무개씨가 지난 3일 서울 지하철 석촌역 8번 출구 앞 점자 블록 위에 주차된 킥보드에 걸려 멈춰 섰다. 장필수 기자
‘드르륵 드르륵 탁’. “여기 벽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노란 점자 보도블록 위를 순조롭게 지나가던 케인(시각장애인용 지팡이)이 탁 소리와 함께 멈췄다. 주차된 전동 킥보드였다. 시각장애인 최아무개(40)씨는 케인을 들지 않은 왼손을 휘저어 자신의 왼쪽에 있는 근로지원인 황아무개(27)씨를 황급히 찾았다. 황씨의 팔꿈치를 붙잡고 나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옆에서 킥보드라고 말해줘야 알지 아니면 몰라요. 점자 블록 위에 있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는 다산콜센터나 경찰에 신고하면 처리해주는데 킥보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최씨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인근에 주차된 킥보드 옆을 지나가고 있다. 장필수 기자
‘도로 뒤 무법자’ 전동 킥보드는 최씨 같은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자들에게 지뢰나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에서 소리 없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데다 도로 곳곳에 방치돼 보행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최씨와 함께 지난 3일 오후 4시 반부터 한시간가량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역과 9호선 석촌역 일대를 같이 걸었다. 최씨는 한시간 동안 걸어가면서 수시로 멈춰 서야만 했다. 전맹(빛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인 최씨는 오로지 케인 끝에 달린 롤팁이 전하는 노면의 촉감과 주변 소리만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도로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킥보드는 최씨에게 ‘벽’이나 마찬가지다. 석촌역 8번 출구 앞은 20여대의 킥보드가 점자 블록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점자 블록 위에 주차된 킥보드를 피해 돌아가려던 최씨의 케인이 킥보드 바퀴에 걸렸다. 최씨는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곁에 있던 황씨가 붙잡지 않았으면 차도로 넘어져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최씨는 검붉은 멍과 흉터가 곳곳에 있는 정강이를 드러내 보이며 “자전거나 오토바이면 허리에 닿아 위치를 알 수 있는데 킥보드는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황씨는 “킥보드는 높이가 낮아서 딱 어른의 발목에 걸린다. 부딪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넘어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주행 중 소음이 거의 없다는 점 또한 소리에 민감한 시각장애인에겐 위험 요소다. “(킥보드는) 오토바이랑 자동차와 달리 전기로 가니까 소리가 안 나요. 타는 사람들도 조용히 피해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최씨가 말을 건네는 순간에도 바로 옆을 킥보드가 쌩하고 지나쳤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도로 소음이 심했던 탓인지 최씨는 킥보드가 본인 옆을 지나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현행법은 킥보드의 인도 주행을 금지한다. 그러나 이날 킥보드를 탄 사람들은 계속 인도를 오갔다.
서울 송파구 석촌 호수 사거리에 여러 회사의 킥보드가 방치돼 있다. 장필수 기자
킥보드 관련 사고가 계속되자 지난 2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전동 킥보드 주정차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했다. 횡단보도, 점자 블록, 엘리베이터 입구, 자전거도로 등 안전 문제가 우려되는 13개 구역에는 킥보드를 세울 수 없도록 전동 킥보드 업체와 지방자치단체가 합의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입법이나 지자체 조례 제정 등이 필요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0분 만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를 최씨는 1시간 넘게 걸어야 했다. 해 질 무렵 영상 2도까지 떨어진 추운 날씨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케인을 쥔 최씨의 손이 파르스름해졌다. 근로지원인 황씨가 “손이 완전 얼음장 같네”라며 최씨 손을 감싸 쥐었다.
글·사진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8605.html#csidx21c657a70f37574a9132c60ca88de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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