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소비자다] 비대면 쇼핑의 소외···음성 지원 안 되는 쇼핑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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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7-26 10:38 조회 1,134회 댓글 0건본문
[장애인도 소비자다] 비대면 쇼핑의 소외···음성 지원 안 되는 쇼핑몰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입력 : 2021.07.19 06:00 수정 : 2021.07.19 09:22
시각장애인 하유리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휴대전화 속 배달앱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씨는 자주 이용하는 배달앱과 쇼핑앱을 한 폴더에 모아놓았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시대, 비장애인의 소비는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장애인은 원하는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받기가 이전보다 더욱 힘들어졌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소비자로서 장애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주는 데엔 인색하다. 경향신문은 이번 시리즈 기사를 통해 장애인을 복지·인권의 틀로 바라보는 시야를 넘어 소비의 주체로서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또 미력하나마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을 조명하고,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짚어본다.
팝업창 거의 ‘그림 이미지’
글자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인식 못해 시각장애인 ‘암담’
자판 섞여 있는 보안키패드
상품 결제까지 ‘끝없는 미로’
“소비 소외계층이라 느껴져”
“아, 또 이러네. 지금 팝업창 뜬 거 맞죠? 닫기를 눌렀는데 커서가 자꾸 튕기는 것 같아요.” 노트북 앞에 앉은 하유리씨(33)가 온라인 쇼핑몰 ‘옥션’ 홈페이지를 앞에 두고 5분여의 씨름 끝에 이렇게 말했다. 시각장애인인 하씨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기자에게 온라인 쇼핑몰 이용의 어려움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홈페이지 입장부터 난관이었다. 공지사항, 세일 등 ‘알짜배기’ 정보가 그림 파일로 제공되는 팝업창이 문제였다. 팝업창에서 ‘스크린 리더’가 읽어낸 글자는 ‘오늘 그만 보기’와 ‘닫기’ 단 두 개였다. 스크린 리더는 웹 페이지 안에서 글자를 추출해 읽어주는 보조 프로그램이다. 상품 사진과 함량·성분·홍보 문구를 하나의 그림 파일로 만들어 올리는 경우 텍스트 추출이 쉽지 않아 제품 정보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스크를 비롯해 이날 하씨와 기자가 둘러본 거의 모든 상품의 상세 정보가 사진이나 그림 등 이미지 콘텐츠로 업로드돼 있었다.
대체 텍스트 미제공 외에도 문제는 산적했다.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시 요구되는 보안키패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었다. 키보드의 숫자와 알파벳 순서를 뒤섞어 보여주는 것도 문제였고, 스크린 리더와 같은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과 로봇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인증 수단 ‘캡챠’ 역시 일부 공공기관이나 법인 사이트를 제외하면 음성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비밀번호 찾기, 로그인, 온라인 결제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씨는 “모바일 쇼핑은 온라인 쇼핑보단 상황이 조금 낫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업데이트를 통한 개선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것이다.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은 채팅창의 음성추출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약 2주 만에 개선된 시스템을 선보였고, G마켓 모바일 앱은 시각장애인들이 보안키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다만 미관상의 이유로 이뤄지는 잦은 홈 화면 개편은 ‘독’이라고 했다. “검색창이나 기본 카테고리 위치를 다시 익혀야 하니까 당황스럽죠.”
경쟁이 치열한 선착순 구매나 티켓 예매는 꿈도 못 꾼다. 하씨는 “가수 성시경을 좋아하지만 콘서트는 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며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데다 좌석 선택 역시 비시각장애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씨는 비대면 쇼핑을 “모험”이라고 정의했다. “웹서핑을 하다가 ‘오늘의 세일’ ‘특가’ 이런 게 뜨면 1분도 안 돼서 구매 가능한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물건 하나 사는 데 몇십분을 붙들고 있으면 정말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소비 소외계층이구나 싶을 때도 있고요.”
하유리씨가 ‘스크린 리더’라는 보조 기구를 이용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스크 구매를 시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법 ‘평등한 정보 접근성’ 명시
G마켓·옥션 등 10대 업체 중
웹 접근성 인증받은 곳 전무
이런 상황에도 시각장애인의 웹 접근성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에 따르면 G마켓·옥션·11번가 등 ‘10대 온라인 쇼핑몰’ 가운데 웹 접근성 인증을 받은 곳은 없다. 웹 접근성 인증은 2014년부터 국가 공인인증으로 시행되고 있다. 1·2단계 심사에서 대체 텍스트 제공, 키보드 사용 보장 등 24개의 검사항목 평균 준수율이 95% 이상이어야 하고, 장애인이 직접 심사하는 3단계 심사에서 준수율 100%가 돼야 한다.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근거로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차별을 받고 있다”며 롯데쇼핑, 이마트(SSG닷컴), 이베이코리아(G마켓)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3년간의 재판 끝에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한성수)는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각 10만원을 배상하고 모든 상품 사진에 대해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명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쇼핑몰들이 판결에 불복하면서, 오는 8월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배제되는 등 사각지대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최근엔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인공지능 쇼핑앱이 출시되는 등 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제한된 상품을 판매하는 등 한계가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쇼핑몰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 쇼핑몰을 누구나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춰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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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입력 : 2021.07.19 06:00 수정 : 2021.07.19 09:22
시각장애인 하유리씨가 지난 12일 자신의 휴대전화 속 배달앱을 이용해 음식을 주문하는 모습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씨는 자주 이용하는 배달앱과 쇼핑앱을 한 폴더에 모아놓았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시대, 비장애인의 소비는 빠르게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장애인은 원하는 물건을 사고 서비스를 받기가 이전보다 더욱 힘들어졌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소비자로서 장애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주는 데엔 인색하다. 경향신문은 이번 시리즈 기사를 통해 장애인을 복지·인권의 틀로 바라보는 시야를 넘어 소비의 주체로서 장애인이 처한 상황을 진단해보고자 한다. 또 미력하나마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을 조명하고, 변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도 짚어본다.
팝업창 거의 ‘그림 이미지’
글자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인식 못해 시각장애인 ‘암담’
자판 섞여 있는 보안키패드
상품 결제까지 ‘끝없는 미로’
“소비 소외계층이라 느껴져”
“아, 또 이러네. 지금 팝업창 뜬 거 맞죠? 닫기를 눌렀는데 커서가 자꾸 튕기는 것 같아요.” 노트북 앞에 앉은 하유리씨(33)가 온라인 쇼핑몰 ‘옥션’ 홈페이지를 앞에 두고 5분여의 씨름 끝에 이렇게 말했다. 시각장애인인 하씨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 사무실에서 경향신문 기자에게 온라인 쇼핑몰 이용의 어려움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홈페이지 입장부터 난관이었다. 공지사항, 세일 등 ‘알짜배기’ 정보가 그림 파일로 제공되는 팝업창이 문제였다. 팝업창에서 ‘스크린 리더’가 읽어낸 글자는 ‘오늘 그만 보기’와 ‘닫기’ 단 두 개였다. 스크린 리더는 웹 페이지 안에서 글자를 추출해 읽어주는 보조 프로그램이다. 상품 사진과 함량·성분·홍보 문구를 하나의 그림 파일로 만들어 올리는 경우 텍스트 추출이 쉽지 않아 제품 정보를 확인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스크를 비롯해 이날 하씨와 기자가 둘러본 거의 모든 상품의 상세 정보가 사진이나 그림 등 이미지 콘텐츠로 업로드돼 있었다.
대체 텍스트 미제공 외에도 문제는 산적했다.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 시 요구되는 보안키패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었다. 키보드의 숫자와 알파벳 순서를 뒤섞어 보여주는 것도 문제였고, 스크린 리더와 같은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과 로봇을 구별하기 위해 만든 인증 수단 ‘캡챠’ 역시 일부 공공기관이나 법인 사이트를 제외하면 음성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비밀번호 찾기, 로그인, 온라인 결제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씨는 “모바일 쇼핑은 온라인 쇼핑보단 상황이 조금 낫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앱) 업데이트를 통한 개선 속도가 비교적 빠르다는 것이다.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은 채팅창의 음성추출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약 2주 만에 개선된 시스템을 선보였고, G마켓 모바일 앱은 시각장애인들이 보안키패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다만 미관상의 이유로 이뤄지는 잦은 홈 화면 개편은 ‘독’이라고 했다. “검색창이나 기본 카테고리 위치를 다시 익혀야 하니까 당황스럽죠.”
경쟁이 치열한 선착순 구매나 티켓 예매는 꿈도 못 꾼다. 하씨는 “가수 성시경을 좋아하지만 콘서트는 가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며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데다 좌석 선택 역시 비시각장애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씨는 비대면 쇼핑을 “모험”이라고 정의했다. “웹서핑을 하다가 ‘오늘의 세일’ ‘특가’ 이런 게 뜨면 1분도 안 돼서 구매 가능한 세상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물건 하나 사는 데 몇십분을 붙들고 있으면 정말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와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 소비 소외계층이구나 싶을 때도 있고요.”
하유리씨가 ‘스크린 리더’라는 보조 기구를 이용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스크 구매를 시도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법 ‘평등한 정보 접근성’ 명시
G마켓·옥션 등 10대 업체 중
웹 접근성 인증받은 곳 전무
이런 상황에도 시각장애인의 웹 접근성은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에 따르면 G마켓·옥션·11번가 등 ‘10대 온라인 쇼핑몰’ 가운데 웹 접근성 인증을 받은 곳은 없다. 웹 접근성 인증은 2014년부터 국가 공인인증으로 시행되고 있다. 1·2단계 심사에서 대체 텍스트 제공, 키보드 사용 보장 등 24개의 검사항목 평균 준수율이 95% 이상이어야 하고, 장애인이 직접 심사하는 3단계 심사에서 준수율 100%가 돼야 한다.
2017년 시각장애인 963명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을 근거로 “온라인 쇼핑몰 이용에 차별을 받고 있다”며 롯데쇼핑, 이마트(SSG닷컴), 이베이코리아(G마켓)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3년간의 재판 끝에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한성수)는 시각장애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각 10만원을 배상하고 모든 상품 사진에 대해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라고 명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쇼핑몰들이 판결에 불복하면서, 오는 8월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한혜경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이 배제되는 등 사각지대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최근엔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하는 인공지능 쇼핑앱이 출시되는 등 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제한된 상품을 판매하는 등 한계가 있다”며 “시각장애인들이 원하는 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쇼핑몰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 쇼핑몰을 누구나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춰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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